도요산스 제작기 1: 사용자 중심의 폰트를 설계하는 방법

Project
서예지 (타입 디자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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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평소에 글자를 가장 많이 보게 되는 곳은 어디일까요? 저는 잠에서 깨면 가장 먼저 휴대폰 메시지를 확인하고, 이동 중에는 휴대폰으로 메일을 보내고, 자기 전에는 휴대폰 앱으로 전자책을 읽어요. 일과를 찬찬히 되짚어 보면 알 수 있듯 현대인들은 하루 중 많은 시간을 스마트폰의 작은 화면 속 글자를 읽으며 보내고 있어요. 소설, 에세이처럼 예전에는 종이책으로 읽었던 비교적 긴 글도 지금은 모바일에서 많이 읽는 환경으로 변하고 있죠. 이도타입은 이러한 흐름을 반영해 모바일 기기의 작은 화면에서도 잘 읽히는 본문용 폰트를 기획하고 설계해보고자 했습니다.

도요산스 제작기 저널은 이도타입이 한국타이포그라피학회 〈학술대회 21〉 에서 발표한 내용을 바탕으로 하고 있어요. 제작기 1편에서는 글자 디자인에 ‘사용자 중심 디자인 방법론’을 적용하게 된 과정을, 제작기 2편에서는 ‘사용자 대상 가독성 실험’와 그에 따른 디자인 개선 방향에 관한 이야기를 나눠볼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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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적인 폰트 제작 프로세스는 크게 기획-개발-검수-출시 4단계로 나뉩니다. 대다수의 폰트 제작은 폰트 디자이너나 폰트 개발자가 주도하는 방식이에요. 모든 과정에서 사용자의 의견을 반영해 글자를 수정 및 보완하는 과정은 일반적으로 진행되지 않기 때문에 사용자는 완성되어 출시된 시점에서야 폰트를 접할 수 있어요. 그러다 보니 폰트 사용자와 제작자가 원하는 방향이 일치하지 않는 경우가 종종 발생하기도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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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첫 번째 사례는 한글과 라틴알파벳(이하 라틴), 숫자를 섞어짜기 할 때입니다. 폰트 디자이너는 한글보다 라틴을 작게 그리는 경향이 있어요. 라틴의 속공간이 한글보다 크기 때문에 라틴의 절대적 크기가 커지면 한글에 비해 글자가 커 보이기 때문이에요. 하지만 일부 사용자들은 시각적으로 한글과 라틴의 높낮이가 비슷해 보이도록 라틴의 크기를 키워달라는 요청을 할 때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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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사례는 글자 사이, 즉 자간에 대한 부분이에요. 폰트 사용자들은 용도에 따라 자간을 조정해서 사용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폰트 제작자의 입장에서는 글자 디자인에 맞는 최적의 자간을 설정해 놓은 것이므로 가능하면 기본 자간을 바꿔 쓰지 않는 것을 권장해요.

이처럼 폰트 제작자와 사용자가 추구하는 방향이 일치하지 않는 경우 모두에게 답답하고 불편한 상황이 연출될 수 있어요. 사용자는 돈을 지불했음에도 목표를 달성하지 못하고, 제작자는 사용자의 불만을 들어야 하거나 심하게는 전문성이 침해당했다고 느끼는 문제가 발생하는 것이죠. 이러한 오해는 폰트나 타이포그래피 디자인이 비교적 어렵고 전문적인 영역으로 여겨지는 데서 기인한 부분이 있습니다. 폰트 제작자와 사용자 간의 정보 비대칭이 특히 심한 영역이기도 하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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폰트는 전문가가 만든 작품이기 이전에 사용자가 구매하는 상품의 일종이기도 하고, 여타 소프트웨어나 서비스처럼 프로덕트 디자인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게 이도타입의 생각이에요. 이 때문에 폰트 제작자와 사용자의 방향 중 어느 쪽이 옳은지 객관적으로 판단하기에 앞서, 제작자의 의도와 사용자의 요구가 일치하지 않는 이 상황은 최선이 아니라고 생각했어요. 이도타입은 둘의 간극을 어떻게 줄여나갈 수 있을지 고민을 하기 시작했고, 프로덕트 디자인 분야에서 널리 활용되는 ‘사용자 중심의 디자인 방법론’을 참고하여 폰트 설계 프로세스를 세워보려고 했습니다. 그리고 그에 따라 폰트를 만들고 검수하는 게 이 프로젝트의 목표였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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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용자 중심의 디자인 방법론을 참고한 글자 설계 방법이에요. 도요산스 설계 과정에서는 ①모바일 환경에서의 가독성에 대한 특정한 가설을 수립하고 ②프로토타입 제작 후 ③사용성 평가를 실행했으며 ④가설을 검증하고 폰트를 수정 및 보완했습니다. 지금부터는 ①모바일 환경에서의 가독성에 대해 이도타입이 세운 가설에 대해 이야기를 해볼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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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가독성을 위한 첫 번째 가설은 획의 마감 형태에서 출발했습니다. 도요산스는 획의 맺음, 획과 획이 이어지는 부분을 둥글게 마감해 부드러운 질감을 주고자 했습니다. 해상도가 높은 요즘의 디스플레이 상에서는 종이에 인쇄했을 때처럼 잉크가 번지지 않아 획의 마감이 뾰족해 보일 수 있기 때문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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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는 글자의 획 두께(웨이트) 설정입니다. 기존의 본문용 폰트는 종이에 인쇄 시 잉크가 번지며 글자의 획이 두꺼워지는 것을 감안해 다소 얇은 두께로 그려져요. 그 때문에 일반적인 Regular 굵기의 폰트를 디스플레이에서 보면 두께가 얇아 눈이 시리다고 느끼는 사용자를 일부 관찰할 수 있습니다. 도요산스는 모바일 기기의 화면에서 안정적으로 보여야 하기 때문에 e-book에서 자주 쓰이는 리디바탕이나 Kopub바탕을 참고, Regular보다 약간 굵은 두께로 그려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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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번째로 시각중심선입니다. 시각중심선이란 글자의 시각적 중심을 표시한 가상의 기준선을 뜻해요. 서울한강체와 리디바탕은 시각중심선이 비교적 상단에 위치한 폰트입니다. 우리에게 친숙하게 느껴지거나 최근에 출시되는 본문용 폰트들은 시각중심선이 비교적 중앙에 가깝게 위치하고 있다고 분석했어요. 도요산스도 이런 흐름을 따라 사용자에게 좀 더 친숙하게 잘 읽히도록, 시각중심선을 중앙에 두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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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도요산스는 디지털 환경에서 보다 나은 사용성을 위해 한글의 모든 글자인 11,172자를 제작했으며 국문과 어울리는 영문, 숫자, 기호를 개발했어요.

기호에는 귀여운 도요새 글리프도 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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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이도타입이 왜 디스플레이 환경을 고려한 폰트를 제작하려고 했는지, 기존과 다른 방식의 폰트 설계 프로세스를 진행한 이유에 대해 이야기를 해봤어요. 이도타입은 이 과정을 통해 프로토타입 글자를 제작한 뒤 사용자 대상 가독성 실험을 진행했었는데요. 그 자세한 내용은 도요산스 제작기 2편에서 이야기하도록 하겠습니다.

참여한 사람들
프로젝트 디렉팅, 학회 발표: 이도희
도요산스 기획 및 디자인: 서예지
도요산스 라틴 및 숫자 검수: 김소희
폰트 엔지니어링: 강현웅

이 글을 읽고 도요산스를 사용해 보고 싶어지셨나요? 그렇다면 이도타입이 론칭한 기록 플랫폼인 ‘울프’에서 사용해 보실 수 있어요.

울프에서 사용해보기

작성일자 2022.07.18.